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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음반 - LP 11

1984년... 우리들의 '눈물의 파티' - 조용필 6집 LP(1984)

1984년은 연초부터 조용필 팬들의 마음이 뒤숭숭했다. 조용필이 1983년 일본 활동에 이어 1984년 초부터 일본 투어를 위해 거의 한 달 이상 국내 무대를 비우는 동안 언론은 거의 매일 조용필의 결혼 여부를 파헤쳤다. 그 와중에 2월 초에 조용히(?) 조용필의 정규 6집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3월 1일, 휴일에 조용필의 사찰 결혼식 소식이 들려왔다. 그 다음 날이 새학년 첫날이었는데 학교에 갔더니 난리가 났다. 어떤 친구들은 울고, 어떤 친구들은 의외로 담담하고, 어떤 친구들은 안도하고(나도 여기에 해당됐던 것 같다)... 그 안도감이란, 오랫동안 조용필을 따라다녔던 결혼이라는 큰일이 무사히(?) 끝났다라는 것에서 느낀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6집이 좋은 반응을 얻고, 또 결혼을 했으니..

인기 리즈 시절의 음반 - 조용필 5집 LP(1983)

1983년 4월 어느 봄날, 조용필이 하얀 무대 의상을 입고 100분쇼 특집 무대에서 신곡을 불렀다. 그 노래는 '나는 너 좋아'. 멜로디는 발랄했고, 가사는 상큼했고, 조용필의 퍼포먼스도 동적이었다. 그러한 조용필이 모든 동작에 하이톤의 함성으로 응답을 보냈던 여학생들이 반응 역시 발랄했다. 그리고 약 2개월 뒤 '나는 너 좋아'가 포함된 조용필 5집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 조용필 5집 / 1983. 06. 25 / 지구레코드 / LP 조용필의 정규 앨범 재킷 중 가장 멋진 사진이 사용된 앨범이 바로 5집이다. 조용필의 날카로운 콧날의 옆선은 그동안 약간 동그런 얼굴형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다가 5집 재킷 이미지에서 드디어 그 빛을 발했다. 이것은 얼굴살이 좀 빠지고 머리 모양을 바꾼 결과이기도 하..

이것이 명반이다 - 조용필 4집 LP(1982)

1982년은 조용필에게 의미가 있는 해이다. 조용필의 음악적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 정규 앨범 4집이 발표되었고, 인기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던 해가 1982년이다. 물론, 1980년, 1981년에도 조용필은 뛰어난 가창력과 작곡 능력으로 방송국의 모든 가요상을 휩쓸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지만, 1982년부터는 그 인기의 성격이 좀 달랐다. 조용필은 모든 연령에서 지지를 받았지만, 4집 발표를 기점으로 10대 여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어디를 가든, 조용필은 '오빠~'를 외치는 여학생들의 환호에 둘러싸였다. 1982년에 조용필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던 것일까. 4집은 딱 한 곡을 제외하고는 (그 한 곡은 '보고 싶은 여인아'라고 내 마음대로 짐작!) 그가 원하는 곡들로 앨범을 만들었다...

오아시스 레코드 선정 '톱가수 조용필' - 톱가수 4인의 특선집 LP(1980)

조용필이 지구레코드에서 1980년 3월에 발표한 실질적 1집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을 때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음반 한장을 제작했다. 지구레코드의 대박을 지켜봐야 했던 레코드사는 오아시스 뿐만이 아니다. 서라벌레코드사 , 대도레코드, 대성음반, 대한음반제작소, 현대음향 등도 조용필이 수퍼스타로 확실하게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조용필의 음원을 샅샅이 찾아내어 다시 레코드로 제작했다. 그 중 한 음반이 바로 '톱가수 4인의 특선집'이다. 여기서 톱가수 4인은 조용필, 김세화, 진미령, 조경수이고, 각 가수의 노래가 4곡씩 수록된 옴니버스 음반이다. 이 음반은 무려 40년이 지난 2021년에 다시 리마스터링으로 제작되었는데, 80년대 이후 쏟아져 나온 지구레코드사 이외의 음반 중 유일하게..

조용필의 공식 첫 라이브 실황 음반 (feat. 송골매) - 신체장애자 자선공연 실황 LP(1981)

현역 가수 중 조용필 만큼 라이브 무대를 많이 가진 가수도 많지 않다. 2~3곡 정도 부르는 무대 말고 1~2시간이 넘은 단독 공연 횟수를 세자면 그 횟수는 더 많아진다. 그러한 만큼 라이브 앨범이 많이 제작됐을 것 같지만, 또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1980년 이후 공식적인 조용필의 첫 라이브 앨범은 어떤 것일까? '신체장애자를 위한 조용필. 서세원. 송골매 자선공연 실황 음반' 앨범 타이틀이 길고도 긴 1981년 음반이다. LP로 제작된 이 라이브 앨범은 1980년 이후 조용필의 첫 공식 라이브 실황 앨범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가수의 노래가 공식적으로 같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팬으로서 의미를 하나 더 둔다면 '여와 남'의 초연 라이브가 실린 음반이기도 하다. 조용필은 '신체장애..

자부심 뿜뿜! 조용필 15집 LP를 소장한다는 것은 - 조용필 15집 LP(1994)

많이 팔린 음반은 희소 가치면에서는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정말 많이 팔려서 전국 곳곳에 그 음반이 존재한다. 그런데 덜 팔린 음반은 재판, 3판으로 제작될 확률이 낮기 때문에 먼 훗날, 시간이 흐르면 희소하게 된다. 조용필의 음반 중 덜 팔려서 소장 가치가 올라간 음반이 바로 15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15집 LP. (CD는 여러 버전으로 재발매되었다) 15집은 조용필이 1994년, 결혼을 한 지 몇 개월 만에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의 이름으로 나온 음반이다. 1994년, 나는 이 조용필의 15집을 얼마나 들었던 것일까. 14집까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음반을 사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분명한데, 15집에 대한 기억을 말해보라면... 분명, 음반 구입은 했고, 들었지만...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

'고추잠자리'와 '미워 미워 미워' 사이 - 조용필 3집 LP(1981)

1981년 7월, 한 여름에 2집 앨범의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3집이 발표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3집은 완전히 다른 장르가 섞여 있는 '혼종'의 앨범이지만, 그 섞임이 바로 3집의 컨셉이었을 것 같다. A면과 B면의 색깔이 완전히 다르게... 그래서였는지 3집 앨범은 초판 발매 이후 얼마되지 않아 재킷이 완전히 바뀌는 특이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내가 가수 조용필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아마도 3집 활동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전에도 '촛불'을 부르던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냥 지나쳤었다. 그러다가 3집의 문제작 '고추잠자리'의 '엄마야~!'를 듣고서는 저렇게 특이한 노래가, 좀 독특한 가수가 있구나... 했던 것 같다. 3집의 LP는 대략 네 종류일 것이다. ① 정말 잠깐 판매되었다 사라진 풀밭 사..

조용필이 부른 김희갑 작곡의 노래들 - '김희갑 + 조용필 앙상블' LP (1989)

조용필의 정규 앨범 곡들 중 작곡가 조용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곡을 만든 작곡가는 김희갑이다. 조용필은 김희갑 작곡의 곡을 몇 곡이나 불렀을까? 정규 앨범에서만 14곡이다. 그리고 70년대 무명 시절에 녹음해 발표한 까지 더하면 15곡이다. 이 정도 되면 '조용필 + 김희갑'의 기획 음반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1989년에 2장의 앨범이 제작되는데, 한 장은 정규 앨범인 10집 Part 2이고, 다른 한 장은 '김희갑 + 조용필 앙상블'이라는 기획 음반이다. 나는 '김희갑 + 조용필 앙상블'을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로 들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카세트는 분실하고, 한참 후에야 LP로 구했다. 중고 거래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음반인데다 나올 때마다 가격도 높아서, ..

폼 좀 잡은 조용필 독집 앨범 재킷 - '님이여/어디로 갔나요' LP(1976)

조용필의 목소리를 담은 첫 음반은 독집이 아니라 옴니버스였다. 1971년 '뮤지칼 - 사랑의 일기'라는 옴니버스 앨범에 조용필의 노래 4곡이 실렸다. 그렇다면 1970년대 조용필의 단독 앨범은 언제? 1972년 '스테레오 힛트앨범 제 1집'과 1976년 '님이여/어디로 갔나요', 이렇게 이 두 장의 앨범이다. 두 장의 독집(독집, 옛스런 표현이다.) 중 자작곡으로 승부를 건 앨범이 '님이여/어디로 갔나요'이다. ▣ 조용필 독집 님이여 · 어디로 갔나요 / 1976 / 서라벌레코드 / LP 나는 이 음반 LP를 2장 가지고 있는데, 한 장은 중고로 구입했고, 한 장은 선물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음반의 재킷 디자인이 다를까 싶었는데, 찬찬히 보다 보니 재킷의 노래 제목 표기와 가수 이름의 서체, 그리고 레..

좀 아쉽지만 '촛불'이 있으니 괜찮아 - 조용필 2집 LP

조용필 2집은 팬들 사이에서도 좀 아쉬운 앨범으로 통하는 느낌이다. (인터뷰나 자료를 보면 조용필 자신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발매된 시기가 아쉽다. 발매(제작) 일자가 1980년 12월 5일로 나오는데, 1980년 봄에 발표한 1집의 초대박 히트로 기대감이 폭발했을 때였는데, 굳이 한 해가 다 넘어가는 12월 초에 새 앨범을 내다니... 조금 여유를 가지고 그 다음 해 봄 즈음에 나와도 됐을 텐데 레코드사의 초조함과 압력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1집의 수록곡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와 '슬픈 미소'가 새로운 녹음이 아닌 이전 녹음으로 그대로 재수록되는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곡 수가 부족했다면 카네키홀 공연 기념 음반이라고 표제를 달았으니 그 공연의 라이브 실황..